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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유산 일기를 써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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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곱 가족이 들려주는 찬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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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들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유산 일기를 써보길 권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녀의 삶이 있다면, 그 삶이 가능하도록 지금부터 필요한 유산을 물려주라. 돈과 재산은 나중에 필요할 때 봉투에 넣어주면 된다. 그러나 험난하고 위태로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새와 행동, 습관은 모았다가 한꺼번에 넘겨줄 수가 없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명심할 가장 중요한 경구 하나가 있다면, “당신의 자녀는 결국 당신을 닮은 삶을 살 것이다”라는 말이다. 가정 폭력을 일삼던 어느 소년의 아버지가 후회하며 절규하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가 싫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똑같은 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열심히 돕고 있는 40대의 어떤 독지가에게서 이런 말도 들었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거리의 가난하고 불결한 아이들을 가끔씩 데려다 돌보아주었고, 심지어 어떤 때는 내 방에서 함께 기거하게도 했습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어서 울고 반항도 했고, 가출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남을 돕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겼고, 즐겁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행동이 30년이 지나서 지금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흔히 유산 遺産 하면, 부모가 남겨주는 재산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유산 이야기만 나오면 대다수의 사람은 물려줄 돈이 있는 부잣집 일로 여기고, 나와는 거리가 먼 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아니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폭력하는 버릇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고, 남을 돕는 40대 독지가는 그 아버지에게서 남을 돕는 희생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습관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부모가 자손에게 물려주는 유산에는 돈과 재산만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와 행동 습관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정작 돈과 재산은 유산의 큰 몫이 되지 못한다. 현대그룹의 신화를 이룬 정주영 회장은 부모가 물려준 유산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며,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부를 이룰 수 있는 마음과 행동 습관을 유산으로 받았던 것이다. 
빌 케이츠는 윈도 시스템을 개발해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그는 이 엄청난 재산을 남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다. 전 재산을 사회사업에 내놓았다. 평범한 봉급쟁이였던 아버지에게서 자선의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바마는 어떤가. 그의 가난한 친아버지와 양아버지는 돈과 재산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남다른 시선을, 키워준 어머니와 외조부모는 사랑과 배려라는 교훈을 유산으로 남겼을 것이다. 오바마가 온갖 난관을 뚫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그런 마음과 행동 습관이라는 유산이 빙산의 밑부분처럼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길이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부모다. 자녀는 불원간 독립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시점부터 자녀가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한다. 이 준비가 바로 유산 남기기 과정이다. 
유산은 자녀를 독립시키는 날 봉투에 담아 건네주는 돈과 재산 문서가 아니다. 자녀가 태어나는 날부터 부모 슬하를 떠나 따로 살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마음새와 생활 습관이다. 자녀는 부모 슬하를 떠나는 순간부터 부모가 보여준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인간의 굴레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부모들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유산 일기를 써보길 권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녀의 삶이 있다면, 그 삶이 가능하도록 지금부터 필요한 유산을 물려주라. 돈과 재산은 나중에 필요할 때 봉투에 넣어주면 된다. 그러나 험난하고 위태로운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새와 행동 습관은 모았다가 한꺼번에 넘겨줄 수가 없다. 매일매일 절박한 심정으로 몸소 보여주고 꾸준히 실천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고, 자신 속에 잠재된 소질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면 당신은 훌륭한 부모다. 언제나 쉽게 몰입하는 일이 있고, 만족을 지연시킬 줄 알고,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우주만큼 넓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남겨줄 수 있다면, 당신은 훌륭한 부모다.


타샤 튜더가 며느리 김은임 씨에게 물려준 이야기
마음먹은 대로 사는 삶

1994년 미국 버몬트 주의 울울한 침엽수림을 뚫고 들어선 타샤 튜더의 집. 종이 달린 쪽문을 열자 타샤 튜더는 코기(웨일스산 작은 개) 두 마리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덕에서는 닭고기 수프가 끓고 집 안엔 갓 구워낸 빵 같은 온기가 흘렀다. 시집온 며느리에게 건넨 첫마디는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부모님 직업은 무어냐?” 대신 “소리만 듣고도 북서풍인지 남동풍인지 알 수 있느냐? 새소리를 분별할 수 있느냐?”였다. 
전기도 수도도 없지만 대신 지하수 펌프, 장작 때는 스토브, 나무 변기, 구리 욕조가 있는 집에서 19세기 삶을 산 타샤 튜더. 직접 기른 아마로 실을 잣고 천을 짜 옷을 해 입고, 집에서 기르는 염소 젖으로 버터와 치즈를, 손수 기른 산딸기로 잼을 만들며 ‘자급자족’의 삶을 산 타샤 튜더. 며느리 김은임 씨는 처음엔 이게 웬 구약에나 나옴직한 풍경일까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삶이야말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독립을 이룬 ‘진짜 인간’의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 인간으로서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이 와도 의식주와 정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당연히 알아야 할 일(바느질, 빵 만들기, 요리, 농사일 등)을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가르쳤다. 그건 인간이 자연의 노예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길, 사람 사는 일 자체로 자연다워지는 길이기도 했다. “자연과 동물은 배신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랑을 돌려줘 그들을 더 사랑하게 한다”는 타샤의 이야기를 김은임 씨는 이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타샤는 손발이 밧줄처럼 거칠어지도록 밭일을 했지만, 집 안에서는 늘 빅토리아 시대의 귀부인처럼 자신을 대접했다. 홀로 티타임을 즐길 때도 들꽃과 손수 만든 양초로 방을 장식하고, 오스트리아산 옷감으로 짠 18세기풍 드레스를 입고, 조상님이 물려준 2백 년 된 찻잔에, 직접 만든 허브티를 따라 마셨다. “내가 누릴 수 있어야 귀한 것이다. 작은 것에서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라”는 삶의 가르침이었다. 하루처럼 행복한 일생을 살다 떠난 타샤. 그가 자손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남긴 유산은 ‘맘먹은 대로 사는’ 삶, 그것에 다름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자연스럽고 고요하고 부지런히 사는 일, 그래서 인간다워지는 일.



보성 선씨 21대 종부 김정옥 씨 
3백50년 된 씨간장의 비밀 

“우리 집안은 전쟁통에도 장 담그기를 멈추지 않을 만큼 장을 중히 여긴 집안이에요. 아직도 5대 봉사 奉祀(5대를 받들어 제사 지내는 것)가 철칙일 정도로 조상 모시기를 중히 여기니, 제사상에 올리는 간장도 신성시할 수밖에요. 제사상에 꼬박꼬박 씨간장을 올려 조상님께 장맛을 뵈드리는 걸로 집안이 무탈함을 알리는 거죠.” 며느리들이 대물림한 이 씨간장독은 볕 바른 자리에 담을 두르고 대문에 빗장까지 걸어 살핀다. 금줄을 쳐 잡신들조차 얼씬하지 못하게 살핀 이 씨간장독은 1998년 큰 홍수 때도 온전했다. 처마까지 물이 찼는데도 씨간장독은 뒤집어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1리터에 5백만 원에 팔려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 집안의 가보는 3백50년의 내력을 자랑한다(농어업예술위원회의 조사). 그 세월 동안 시어머니, 시할머니, 멀리는 조선 중기의 며느리 혼까지 깃든 씨간장. 햇빛도, 바람도, 질 좋은 균(이 집은 발효균을 중히 여겨 간장을 달이지 않는 대신 간수 농도를 조절하거나 옻나무 숯으로 잡균을 막는다. 다음 해 햇간장을 담글 때 씨간장을 섞는 방법으로 대물림된 발효균이다)도 곰삭혀 맛의 정점으로 이끈 ‘여자들의 예술품’. “시집왔을 때 시할머니가 절 불러 앉히고는 ‘집안이 망한 다음에야 장 만드는 걸 그만두는 법이다. 장이란 바로 그 집이다’ 하셨죠. 종부로 30년 살다 보니 그 뜻을 알 듯해요.” 모든 먹을거리는 여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여무는 시간이 바로 가족의 역사, 집안의 역사다.



국악인 안숙선・최영훈 씨 모녀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하라”
 
30년 전 국악인 안숙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가 <가루지기뎐>에 출연해 열연 중일 때, 객석에 있던 두 살 난 딸 최영훈(국립창극단 거문고 연주자) 씨가 무대에 선 엄마를 보고 아장아장 따라 나왔다. 날 때부터 우리 소리와 노닌 최영훈 씨, 그에게는 국악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안숙선 씨는 딸이 다 클 때까지 한 번도 “앉아라” 하고 가르친 적이 없다.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딸이 보이면 “너도 거기서 해봐”하는 정도였다. 
딸이 국악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그는 반대할 요량이었다. 국악이 요즘엔 낯선 장르이고, 재능이 뛰어나도 나이 들어야 깨우칠 수 있는 먼 길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하겠다고 하자 ‘손이 곧으니 거문고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소리하는 사람에게는 몸이 악기요, 온몸으로 연주한다는 건 고된 일이거든요.” 어여쁜 고명딸이 살벌한 길을 걷게 할 수 없어 우회적으로 반대한 것이다.‘국악계의 프리마 돈나’로, 53세까지 열여섯 살 춘향 역을 연기했던 안숙선 씨. 딸 사랑이 한없지만 그 딸이 ‘후배’일 때는 엄정했다. 폭포를 뚫고 나올 듯한 목소리, 그러면서 판소리 한 판을 아우르는 북소리 같은 목소리로 그는 ‘한 음 한 음 정성을 다하라’고 강조한다. “네가 혼을 다해야 관객이 그 혼을 느끼는 것이다. 관객이 못 알아듣는다 탓하지 말아라. 모두 네 혼과 신념이 부족해서다.” 



<명심보감> 판본 지킴이 추연섭 씨
천 년 가는 우리 말씀 

<명심보감> 한 구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심보감>을 지은 이는 누구일까? 말문이 막힌다. 중국 어느 학자일 것이라 어림하는 정도다. <명심보감> 목판 31매(1869년 제작, 대구 유형문화재 제37호)가 소장된 대구 인흥서원에 가서 해답을 찾았다. “<명심보감>은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노당 추적 秋適 선생이 지은 우리 책입니다.” 버선발로 마중 인사를 나온 추연섭 씨의 첫마디다. 그는 추적 선생의 후손으로, 매일 아침 이곳에 나와 서원을 지키고 목판을 돌본다. “추적 선생이 제자백가의 금언과 명구를 모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마음을 밝히고(명심), 보물처럼 귀한 거울(보감)’이 되는 글이지요.” 고려 말부터 7백 년 가까이 <천자문> <소학> <동몽선습>과 함께 어린이의 도덕책으로 사랑받았다.
<명심보감>이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한때 유실되었다가 후손인 추세문 선생(추연섭 씨의 고조할아버지)이 추적 선생의 글을 다시 편저해 목판본이 만들어졌다. 그뿐이랴. 한국전쟁 중에도 추연섭 씨는 피난을 가지 않고 곁에서 지켰다. “아주 특별한 목판입니다. 1550년에 쓴 율곡 이이의 서문과 발문이 들어있지예.” 율곡 이이의 글이 포함된 <명심보감>은 인흥서원에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추연섭 씨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쓸고 닦으면서 지키고 전승하려는 것이 단지 31장의 목판뿐이랴. 그는 나직이 일갈한다. “천 년이 지난 뒤에도 예의와 도덕이 있시야 하지 않겠습니꺼?” 그렇다면 <명심보감>이라는 문화유산을 지닌 민족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보이소, 우야든지 공부하고, 기술 쌓고, 아껴 쓰고,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하지만 감히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가정 재무 컨설턴트 제윤경 씨 
낡은 가계부, 그 속의 위대한 유산 

밥은 항상 조금 모자라게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법이어서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밥 먹고 사는 일은 힘들고 거룩한 일일 것이다. 식솔의 밥을 위해 자신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가계부는 그래서 더 눈물겹다. 한숨 소리와 섞어 쓰던 어머니의 가계부, 쌀독에 쌀 떨어질까 봐 세상 수모 다 겪으며 사신 아버지의 가계부에는 가족의 눈물과 꿈이 다 들어 있다. “아이가 자라서 부모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한 푼이라도 허튼 소비 없이 산 부모의 삶을 존경하게 될 것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기록한 그 성실함에 감동받을 거예요. 가계부는 부모의 삶을 담은 역사서,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인생 교과서, 경제 교과서이자 앞으로의 계획을 살피게 하는 인생 플래너죠.” 
‘가정 재무 컨설턴트’라는 매끈한 직업을 가진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에게 오히려‘가난한 가계부’가 더 멋진 것이라고 말한다. 돈은 원래 자기 욕심보다 항상 부족하게 돼 있으니, 덜 움켜쥐고 덜 소유하면서 대신 시간을 의미 있게, 가치롭게 쓰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재테크다, 그런 생각에서 딸 예진이가 3학년 때부터 어린이용 가계부를 쓰게 했고, 아이는 자의식이 물질로 표현되지 않는, 상대적 박탈감이 없는 아이로 커줬다. 정해진 용돈을 스스로 재분배, 통제하면서 ‘과정’ ‘성취 동기’의 귀중함도 알게 됐다.“가계부야말로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진짜 행복한 부자는 열심히 벌고 지혜롭게 통제하는 사람이라는 큰 교훈을 안겨주는 위대한 유산. 사후에 남길 유산은 나의 삶 자체면 충분하다는 걸 알게 하는 위대한 기록. 다섯 살짜리 결이가 글씨를 배워 가계부를 쓸 수 있게 되면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보물이 될 겁니다.”



생태 주택 지은 조용진・박은희 씨 부부 
후손을 위한 집, 그리고 고향 

“예로부터 집이라는 것은 터가 중요했습니다. 한번 집 짓고 살면 이사를 잘 다니지 않았어요. 나무가 뿌리 내리듯 집도 그 터에 뿌리를 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릅니다. 집이 투자 수단으로 전락했거나, 옷 갈아입듯 집이 낡으면 이사를 갑니다.” 조용진(충주대학교 환경공학부 교수) 씨의 말을 아내 박은희 씨가 잇는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도시로 모여들었고, 그들의 자녀 세대는 고향을 상실했습니다. ‘고향’하면 떠오르는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박은희 씨의 생각은 단지 바람에 그친 게 아니다. 강력한 의지를 불렀다. 8년 전 청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의 땅을 봐뒀다. 그리고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집 짓기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오랫동안 바라던 흙집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던 차 스트로베일(볏짚) 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긴 공사 끝에 집이 완성되었다. 경량 목조 건물과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결합된 구조로, 실용성을 높였다. 생태 건축을 짓게 된 것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환경운동을 열렬하게 해왔던 박은희 씨는 이제부턴 생태적인 삶을 직접 실천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텃밭에서 무공해 채소를 기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부모님의 새집 소식을 듣고 정말 좋았어요. 어릴 적 강가 옆 한옥집이었던 할아버지 댁에서 놀던 추억이 생생하거든요. 내 아이에게도 시골이나 마음의 고향에 대한 추억을 남겨줄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지요.” 장남 조한별 씨의 말이다. 손님의 편한 휴식을 위해 별채로 구분한 황토방에 불을 때던 박은희 씨가 바람을 전한다. “아이들에게 도시 생활은 불가피할 거예요. 하지만 언제든지 등 따숩게 하고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고향이 있다면 삶이 훨씬 윤택해지겠지요.”



예술인 조영남 씨
“물려줄 유산이란 없다!”
 
“나도 그저 하나의 인간인데, 감히 뭘 물려줄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욕심이고 오만이야.” 유산으로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하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물려주는 것’이란 없어요. ‘물려지는 것, 남겨지는 것’이 있기는 하겠죠. 근데 그건 ‘재산’이지 뭐.”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로부터 그에게 전해진 것은 DNA가 전부였다. 그러나 한 번도 원망해본 적 없다. 충분히 감사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의 삶을 안내하거나 판단하려고 한다. 그런데 부모가 무슨 권한으로 그러느냐고 그는 다시 묻는다. “정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훌륭한 유산 한 가지 추천할게요. 부모 자신부터 신나게 사는 것”. 부모가 재미있게 살면, 자녀도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 호쾌한 예술가는 재산 분배에 대해서도 쿨하게 공개했다. 얼마 전 전시의 일환으로 연 장례식 퍼포먼스를 통해서다. “재산의 4분의 1은 죽을 때 내 옆에 있는 여자가 갖고 나머지 4분의 3은 아들 둘과 딸 한 명이 똑같이 4분의 1씩 나눠 가져라. 다만 내 옆에 있는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 경우는 그것을 취소한다”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자녀가 어떻게 살아갔으면 하는지, 바람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희망 사항도 없어요. 그 아이가 내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해요.” 하지만 그는 희망 사항을 들키고 말았다. 죽을 때까지 딸이 남자친구를 안 데려왔으면 좋겠다는 무모한 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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